•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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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3727958477.jpg▲ 박성호 (여주대학교 지도자Speech과정 교수, 본지 논설위원)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아들 중에서 가장 재주가 뛰어난 인물은 셋째 조식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조식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다. 조식은 문장 실력은 물론 어릴때부터 나라 안팎에서 칭송이 그칠 줄 몰랐다. 그러므로 조조는 큰 아들인 조비를 제쳐두고 후계자로 조식을 세우려고까지 했다. 이에 조비는 동생 조식에 대한 열등감은 물론 미움과 증오가 극에 달했다.

 허나 조조가 세상을 떠난 뒤, 제위에 오른 조비는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동생 조식을 제거하기 위한 묘책을 내 놓았다. 혈육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한 명분으로 평소 글재주가 뛰어났던 조식에게 일곱 걸음 안에 시 한수를 지어보라. 그렇지 못 할 경우에는 대법(大法)으로 다스리겠다고 명령을 한다.
 
권력을 놓고 형제간의 골육상쟁(骨肉相爭)의 이 기막힌 상황에서 나온 것이 바로 조식의 칠보지시(七步之詩)이다. 잠시 경청 해 보자.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뜨거운 가마솥 안에서 슬피 우는 콩이여,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나 자랐거늘, 어찌 그리 급하게 네 몸을 태워 나를 삶느냐> 삼국지 중 감동적인 명장면이다.
 
이 글로 인해 조비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자신이 죽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아우이니 포박한 줄을 풀어 주라 한다. 문장의 위대함으로 인해 인간의 잔인한 내면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가를 감동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본시 한 뿌리에서 나왔거늘” 왠지 마음에 와 닫는 구절 같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대결적인 언어, 삿대질 어법이 아니라, 은유와 상징을 녹여낸 ‘잘 익은 숙성된 언어’의 힘의 위대함을 극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다.
 
38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미국의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그는 세상의 불의에 대해 폭력이 아닌 사랑으로 맞선 비폭력 무저항운동의 선봉장이었다. 일찍이 간디의 사상에 감명 받은 킹 목사는 “폭력을 써서는 안 됩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백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고난과 차별을 해도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줍시다.” 라는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을 군중에게 호소함으로써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되었다.
 
특히 1956년 1월3일 밤 9시30분, 킹 목사 자신의 집에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집안의 유리창은 박살이 났고, 아비규환이 되고 말았다. 헌데 다행히 킹 목사는 집에 없었고 가족들만이 있었다. 연설 중 킹 목사는 이 사실을 접한 후 급히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며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는 흥분된 군중을 향해 부서진 베란다 위에 올라서서 조용히 손을 들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제 아내와 아이들은 무사합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손에 든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복수를 통해선 문제 해결을 할 수 없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합니다.
 
백인 형제들이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절제된 킹 목사의 불꽃같은 숙성된 언어 앞에 핏발선 군중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치 조식의 칠언시를 연상케 하지 않는가?
 
한 백인 경찰은 킹 목사가 아니었다면 자신들은 모두 이미 시체가 되었을 것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폭탄 테러 앞에 조금이라도 ‘대결적인 언어’를 사용 했더라면 엄청난 유혈사태가 빚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허나 그는 무기가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승리 하자고 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모든 사람들을 아군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곧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위대한 지도자로 지금도 추앙을 받고, 최연소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된 이면에는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잘 익은 언어’를 사용 할 줄 아는 힘에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 해 본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처럼 진정한 소통은 ‘가슴에서 나오는 따뜻한 언어’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기 위해 일방적으로 강요하거나 앞뒤 돌아보지 않고 되받아치는 것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만을 초래하는 일이다. 정치권이든 직장이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툭하면 삿대질 어법으로 서로 상처를 입히고,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덜 익은 언어’로 마구 공격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적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이런 유형의 인격을 가진자는 결국엔 스스로 좌초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모두는 킹 목사가 ‘숙성된 언어’로 사람들을 울렸던 것처럼, 숙성된 말과 글만이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았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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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된 언어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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